From the Hand



시작이 있다면 무엇이든 끝이 있기 마련이겠죠. 새해에 뜨는 햇살은 희망과 기대를 주지만, 한 해의 마지막 해 질 녘 햇살은 아쉬움을 남기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열두 달로 분류한 월별도 그렇고요. 그 안에 하루들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생각이 담긴 일 년의 시간을 그림으로 담아보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과 그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 위를 가로지르는데, 내 앞에 놓인 빈 종이는 시간은 없고 오로지 공간만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림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시간을 담을 수 있게 시간의 자리를 비워두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흰 종이 속 빈 공간에 나의 시간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가진 시간을 어림잡아 헤아려보았습니다. 사람의 생애 주기로 보면 제가 살아왔던 시간과 비슷하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인지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지나온 시간을 되새겨보았을 때, 시간은 에 의해서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하루는 빠르게 지나가 짧게 느껴지는 날이 있고, 보통의 속도인 날이 있고, 느리게 흘러가 길게 느껴지는 날이 있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마음이 편안할 때가 있고, 흔들릴 때가 있고, 요동치는 날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월별도 차이가 있고, 매년 돌아왔던 일 년도 다른 속도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렇듯 반복되는 시간에서 동일한 모습이 없는 의 흔적을 나타내보려 했습니다.
 
시간은 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사실 온전한 하루는 햇살 덕분이라는 것을 매번 잊어버립니다.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희미한 빛이 수평선을 뚫고 잔잔한 노란빛을 띠다가 어느 순간 찬란한 빛을 비춥니다. 행복한 순간이 지속되는 듯하지만 슬픔을 품은 노을빛이 순식간에 펼쳐지다가 어둠에 뒤덮입니다. 저는 하루 중 해 질 녘 빛깔에 애착이 갑니다.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겠죠. 하루의 시간이 갖는 햇살의 변화를 의 시간이 담긴 그림 위에 스며놓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일곱 가지 색상표는 하나의 그림에서 밝고 어두움 열 단계로 나누어 순서대로 칠한 흔적의 기록입니다.
 
이렇게 나와 햇살이 만나는 순간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있기도, 기억하지 못하는 하루가 밝은 날이 있었을 테고, 흐린 날이 있었을 테고, 어두운 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시간을 되새기는 것은 지난 시간을 그저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싶다기보다는 반대로 새로운 오늘을 맞이할 때, 조금 더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으로부터 비롯된 나의 하루가 차츰 쌓여서 나를 감쌀 수 있는 따스함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으로부터, 작업노트 2025